영화 스태프들이 하루 평균 5.5시간의 야간근로(밤 10시 이후)를 포함해 주당 평균 75시간의 강도
높은 노동을 하면서도 저임금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한 영화 촬영현장의 모습이다. 영화산업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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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 관객 1억명] 생활고에 멍든 스태프
(상)
스태프 10명중 넷 최저생계비도 못받아
영화 스태프 66%가 연소득 1천만원 안돼
국내 영화 스태프의 66%가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연 1000만원 미만의 소득을 올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영화가 지난해 사상 처음 관객 1억명을 돌파하며 호황을 누렸지만, 스태프 3명 중 2명은 법정 최저임금(월 95만7220원)도 벌지 못하며
‘생계불안 상태’로 몰리고 있는 것이다.
<한겨레>가 16일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을 통해 입수한 ‘2012년 영화 스태프 근로실태 조사
보고서’를 보면, 지난 1년간 영화 제작에 참여해 소득이 있었다고 답한 스태프 416명 중 275명(66%)의 영화 관련 수입이 연 1000만원
미만에 그쳤다. 영화 일로 번 연간 수입이 500만원 미만이어서, 1인 가구 월 최저생계비(45만3049원)도 손에 쥐지 못하는 스태프도
41.7%(243명)에 이르렀다.
이번 조사는 영화진흥위원회·영화산업노동조합·한국영화제작가협회로 구성된 영화산업협력위원회가 지난해
9월24일부터 11월20일까지 제작사 대표(17명), 감독급 스태프(98명), 팀장급 이하 스태프(431명) 등 598명을 대상으로 실시했다.
2009년 스태프 400명을 상대로 조사한 뒤 3년 만에 진행된 설문조사다. 영진위는 이달 말께 보고서를 발간한다. 송호진 기자 dmzsong@hani.co.kr
‘2012 스태프 근로실태’ 조사결과
평균 연소득 3년전보다 114만원↓
74%
“영화수입만으로 생활못해”
“한국영화 재부흥기 맞았다는데
스태프들 상대적 박탈감 더 커져”
“생후 일곱달 된 아기를 보면 이 일을 계속해야 하나 고민이 밀려옵니다.”
10년째 영화 조명팀과 연출부로 일해온 한 스태프는 “영화 수입만으로는 가정을 꾸려가기가 쉽지 않다”며
헛헛한 웃음을 지었다. 지난해 2편의 영화 제작에 참여해 1700여만원을 벌었는데, 그는 “지난해는 운이 좋았다”고 했다. 결혼한 해인
2011년에도 2편의 영화에 참여했지만 제작이 모두 중단돼 그해 수입이 전혀 없었다고 한다. 그는 “영화 일을 하지 못할 땐 아버지 사업체에서
잠깐 일하거나, 부모님한테 생활비 지원을 받기도 했다. 36살이 됐는데도 여전히 이 일을 하는 게 맞는 건지 갈등하는 상황”이라며 답답해했다.
15일 서울 충무로에서 만난 스태프 경력 13년차인 안병호(35) 촬영팀장은 “마치 도화지에 그림을 그리는
듯한 느낌”에 매료돼 영화 촬영 일을 시작했다고 한다. 촬영감독 옆에서 카메라 초점을 잡아주는 일을 하는 그는 지난해 12월 개봉한 영화
<반창꼬>에 5개월 남짓 참여하고, 다른 영화의 촬영 보조팀으로 일해 총 1400만원 남짓을 받았다. 홀어머니와 살고 있는 그가
지난해 영화 일로 번 소득의 전부다. 안 팀장은 “지난해 한국영화가 관객 1억명을 넘겨 재부흥기를 맞았다지만, 처우가 열악한 스태프들이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은 더 커졌다”고 했다. 그는 “스태프끼리 일용직 노동자보다 나을 게 별로 없다고 말하곤 한다”고 했다. “야간근로에 대한 추가
근로수당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고용·산재보험 등 4대 보험 혜택도 거의 받지 못하는 처지”이기 때문이다.
영화진흥위원회·영화산업노조·영화제작가협회로 구성된 영화산업협력위원회가 영화 제작 스태프 59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2012년 영화 스태프 근로실태 보고서’를 보면, 39.6%(218명)가 직업을 바꾸고 싶다고 답했다. 전직의 사유(복수응답)로는
불규칙한 수입(46.1%), 미래불안·불확실성(45.6%)이 많았다. 416명(74.7%)은 영화 수입만으로 생활할 수 없어 ‘영화 이외 다른
일(아르바이트)’을 한 적이 있다고 밝혔다.
응답자들의 ‘영화 업무 전반 만족도’가 ‘보통 이상’(5점 만점에 평균 3.02점)을 기록했으면서도, 전직
뜻을 밝힌 이가 많은 것은 노동시간에 비해 수입이 낮기 때문이다.
이번 조사에서 최근 1년간 영화 관련 소득이 있었다고 답한 416명의 연간 평균소득은 1107만원이었다.
2009년 조사 때보다 114만원 떨어졌다. 팀장급(경력 10~15년차) 이하 스태프 전체가 영화로 번 연평균 소득은 약 988만원(스태프
직급별 응답자 비율을 고려한 가중평균)이었다. 지난해 대졸 신입사원 대기업(3459만원)·중소기업(2254만원·잡코리아 조사 기준) 연봉에 크게
못 미친다. 팀장급 밑인 경력 10년 안팎의 ‘세컨드 스태프’의 연소득은 1073만원에 그쳐, 2인 가구 월 최저생계비(94만2197원)도 벌지
못했다. 스태프의 78.7%(422명)는 ‘임금 수준이 너무 낮다’고 토로했다.
스태프들은 또 연 1.95편의 영화에 참여해 평균 6.9개월 일하는 것으로 조사돼, 최소 5개월 동안
실업상태에 놓이는 것으로 파악됐다. 본격적인 촬영이 이뤄지는 ‘프로덕션 기간’엔 근로기준법의 주당 근로시간(40시간)을 훌쩍 넘는 주당 평균
75시간을 일하면서도 시간외수당(야간·휴일수당)을 받았다는 스태프는 4.5%에 그쳤다. 여성 응답자 195명 중 영화 촬영 기간에 생리휴가를
받았다는 여성은 8명뿐이었다. 실업급여를 받는 고용보험에 가입한 스태프도 29.1%에 머물렀다. 영화 제작 기간 동안 임금을 월급제로 받기를
바라는 이들이 53.7%였지만, 계약금과 잔금으로 나눠 주는 지급형태가 여전히 58.4%를 기록했다. 영화 수익에 대한 성과급을 받은 적이
없다는 스태프 비율은 81.1%였다.
안병호 촬영팀장은 “영진위와 영화산업노조가 스태프의 4대 보험 가입, 초과근무수당 지급 등을 의무화한
표준근로계약서를 만들어 권하고 있지만, 영화 현장에서 표준근로계약서에 따른 계약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스태프들은 당장 이 영화를 놓치면 1년을
쉴 수 있기 때문에 투자·제작사가 요구하는 대로 계약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번 조사의 책임연구원인 김도학 엠앤이(M;E)산업연구소 소장은 “생계유지가 어려워 나이 30대 중반을
넘긴 전문 스태프가 영화계를 급속도로 떠나고 있다. 창작인력이 이탈하면 영화산업 경쟁력과 영화 완성도가 떨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송호진 기자 dmzso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