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산업협력위원회 분쟁중재기구-영화인 신문고

<한국방송> 드라마 촬영을 가던 도중 교통사고로 숨진 보조출연자 박희석씨의 열살 된 딸 미영이 22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한국방송 본사 앞에서 엄마와 함께 1인시위를 벌이고 있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엑스트라의 죽음’
KBS 보조출연자 촬영길 사고
기획사·방송국 산재처리 외면
부인·어린딸 애끓는 ‘1인시위’

부인 윤아무개(40)씨는 이날 아침 8시께 소식을 듣고 한 달음에 합천군 ㄱ병원으로 달려갔다. 남편은 이미 눈감은 뒤였다. 박씨를 보조출연자로 모집했던 ㅇ기획의 원청회사인 ㅌ기획의 이아무개 이사가 병원에 와 있었다. 이 이사는 윤씨에게 “우리는 법적으로 책임이 없다”며 “도리상 340만원의 장례비를 지급하겠다”고 말했다. 부인 윤씨가 강하게 항의하자, ㅌ기획은 2000만원의 장례비를 지급했다. 이후 ㅌ기획은 유족과 연락을 끊었다.

숨진 박씨는 지난 2월 드라마 보조출연자를 모집한다는 ㅇ기획의 광고를 보고 들어가, 지금까지 30여차례에 걸쳐 드라마에 출연했다. 그러나 박씨는 대다수 보조출연자들이 그렇듯 기획사와 고용계약서를 주고받지 않았다.

윤씨는 근로복지공단에 산업재해를 신청하려고 남편을 고용했던 기획사에 관련 서류를 부탁했다. 하지만 ㅌ기획과 ㅇ기획, 한국방송 모두 자신들 책임이 아니라며 박씨의 출연료 지급 관련 서류 발행을 거부했다. ㅌ기획 관계자는 “ㅇ기획에서 출연자를 모집했고 박씨는 ㅇ기획에서 출연료를 받아갔다. ㅇ기획이 처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ㅇ기획 관계자는 “사실상 ㅌ기획이 박씨를 모집한 것이다. ㅌ기획이 처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들은 윤씨에게 “산업재해신청을 해봐야 인정 못받는다”고 설득하기도 했다.

사고 직후 한국방송은 “(박씨의) 장례와 보상 등이 원만하고 신속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지만, 산재 처리를 위한 배려조차 하지 않고 있다. “보조출연자는 쓰고 버리는 소품입니까. 왜 아무도 책임지지 않나요.” 윤씨가 말했다.

지난 15일 윤씨는 출연료 지급 관련 서류를 모두 갖추지 못한 채로 근로복지공단에 산재신청을 했다. 결과는 알 수 없다. 근로복지공단은 보조출연자를 ‘연예 개인사업자’로 규정해 왔다. 지난 2008년 서울행정법원이 드라마에 출연했다가 다친 보조출연자 김아무개씨의 소송에서 “근로자성이 인정된다”고 판결했지만, 이 판례에 따라 근로복지공단에서 산업재해를 인정받는 보조출연자는 극히 드물다. 김형동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실장은 “근로복지공단 등이 법원 판결을 무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문계순 전국보조출연자노동조합 위원장은 “2007년 50대 남성 보조출연자가 한국방송 <생로병사의 비밀> 프로그램에서 17시간 동안 ‘스트레스 실험 체험자’로 참여했다가 쇼크로 숨졌는데도 산재 인정을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미영과 엄마 윤씨는 22일부터 서울 여의도동 한국방송 본사 앞에서 1인 시위를 시작했다. 미영이 들고 있는 손팻말은 자기 키만큼 크다. “KBS는 우리 아빠 돌려주고 각시탈 방영하라”고 적혀 있다. 방송국을 드나드는 사람들은 어린 미영을 힐끗 바라보고 이내 지나쳤다. “이렇게 돌아가실 줄 알았으면 아빠에게 더 잘 할 걸 그랬다”며 미영은 손팻말을 들고 울먹였다. 한 해동안 각종 방송 드라마에 출연하는 보조출연자는 연인원 2만명 정도로 추산된다.

글·사진 허재현 기자 catalunia@hani.co.kr

원문보기 :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34519.html